본문 바로가기
러닝 이야기

오사카 글리코상의 모델: 카나쿠리 시조 마라톤 선수 이야기

by 런브레이크 2024. 6. 7.
반응형

 

오사카를 방문하신 분들이라면 도톤보리 야경에서 터줏대감인 글리코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보셨을텐데요. 오늘은 오카사 글리코상의 실제 모델인 마라토너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일본 마라톤의 선구자라고 불리는 카나쿠리 시조(金栗四三)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그의 삶은 단순히 마라톤 선수로서의 경력을 넘어, 일본 스포츠 역사에 깊은 영향을 미쳤던 인물입니다. 자, 그럼 카나쿠리 시조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시작해볼까요?

카나쿠리 시조의 생애

카나쿠리 시조는 1891년 일본 구마모토현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달리기를 좋아했던 그는 도쿄 고등사범학교(현재의 쓰쿠바 대학)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육상 경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뛰어난 체력과 끈기로 주목받으며, 일본 최초의 올림픽 마라톤 선수로 선발되었습니다.

 

스톡홀름 올림픽 (1912년)

카나쿠리 시조는 1912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제5회 올림픽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당시 일본은 처음으로 올림픽에 참가하는 국가였기 때문에, 카나쿠리 시조의 출전은 매우 큰 의미를 지녔습니다. 그러나 스톡홀름 올림픽은 카나쿠리에게 쉽지 않은 도전이었습니다. 대회 당일 무더운 날씨와 긴 여정으로 인한 피로가 겹쳐 그는 경주 도중 의식을 잃고 중도 포기해야 했습니다.

흥미롭게도, 그는 이 대회에서 도중 포기한 사실이 오랫동안 '실종'으로 오해되기도 했습니다. 1967년, 스웨덴 텔레비전에서 그를 찾아내어 인터뷰한 후, 카나쿠리는 "올림픽 마라톤을 완주하는 데 54년 8개월 6일 5시간 32분 20.379초가 걸렸다"는 유머러스한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후속 경력

카나쿠리 시조는 스톡홀름 올림픽 이후에도 육상 경력을 이어갔습니다. 그는 1920년 안트베르펜 올림픽과 1924년 파리 올림픽에도 참가했습니다. 비록 메달을 따지는 못했지만, 그의 끈기와 열정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마라톤과 육상 발전에 기여

카나쿠리 시조는 단순히 선수로서의 역할을 넘어 일본 마라톤과 육상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그는 대학에서 육상 코치를 맡아 후배들을 지도했고, 일본 전국 마라톤 대회 설립에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일본 육상 연맹의 창립 멤버로서 일본 육상의 기초를 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년과 유산

카나쿠리 시조는 1983년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유산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그를 기리기 위해 다양한 마라톤 대회와 육상 경기가 열리고 있으며, 많은 후배들이 그의 열정을 이어받아 활약하고 있습니다.

 

 

글리코와 오사카의 랜드마크

오사카에 위치한 도톤보리(Dotonbori) 지역에는 거대한 네온사인 간판이 있습니다. 이 간판에는 글리코 마라톤 선수가 크게 그려져 있어, 오사카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포토 스팟이 되었습니다. 특히 밤이 되면 이 간판이 화려하게 빛나며, 도톤보리 지역의 활기찬 분위기를 더해줍니다.

 

글을 마치며..

카나쿠리 시조는 일본 스포츠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의 삶은 단순히 경주에서의 승패를 넘어, 끈기와 열정, 그리고 도전 정신의 중요성을 일깨워줍니다. 오늘도 그의 이야기를 통해 많은 영감을 받으셨기를 바라며, 다음에도 흥미로운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반응형